신민회는 1907년 4월에 설립된 비밀 항일 결사 단체
신민회(新民會)는 상동감리교회 부설 공옥학교의 교사들과 상동감리교회 담임목사였던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조직된 민족 운동을 위한 개신교 감리교회 및 장로교회 지원을 받은 항일 비밀결사단체다. 1907년 이회영, 전덕기,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안창호, 윤치호, 양기탁, 이경희, 김구, 최광옥, 김규식 등을 중심으로 조직 발전되었다. 신민회의 표면적 활동은 교육 계몽, 신식 학교 설립, 신학문 수용 등이 주 목적이었으며, 활동지원은 상동감리교회 교인뿐만 아니라 주변 시장 상인, 개신교계에서 비밀리에 지원하였다. 또한 만주에 한국 독립군을 훈련할 신흥무관학교 훈련기관 설립에 뿌리를 마련하였고, 이후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1907년 4월, 상동교회의 상동청년학원의 교감인 이회영중심으로 서울 지역의 인사들과 안창호(安昌浩)를 위시한 평양을 중심 서북지역 인사들이 주동하여 창립했다. 신민회가 결성되었을 당시, 국내의 상황은 통감부 및 일제의 감시와 신문법, 보안법 등의 탄압을 받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정치활동의 합법성의 한계를 느껴 애국계몽의 틀을 일부 벗어나 투쟁적, 적극적인 구국운동을 모색하고자 결성한 단체가 신민회였다. 신민회는 비밀결사로서 전국적 조직을 표방하였고, 사회각층인사를 망라하여 조직하였는데, 비밀단체임에도 그 활동은 거의 대부분 합법성을 띄고 이루어졌었다.
신민회는 교육 계몽, 신식 학교 설립, 신학문 수용을 주 목적으로 하였고, 만주에 한국 독립군을 건설할 훈련기관 설립 및 훈련기관의 훈련장 마련과 식량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는 토지 확보 등을 추진하였다.
신민회는 경성에 와 있는 지방 인사들을 통해 각지의 개혁 운동가들을 회원으로 가입하게 하였다. 신민회가 조직된 이후 경기, 황해, 평안, 함경 각도에 지부를 설치하고 회원 수를 늘려갔다. 근대 이후의 공화정체를 제창한 대표적 조직으로 실력양성을 통한 국권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국민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였다. 즉, 신민회는 실력 양성론+독립 전쟁론에 입각하여 공화정제를 이상향으로 두었다. 이는 근대 최초로 '민주공화정'을 이상향으로 지향했다는점에서 의의를 두고있으며, 민족 교육 계몽운동 및 무장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신민회 4대강령
- 국민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 고취
- 동지를 발하고 단합하여 국민 운동 역량 축적
- 상공업 기관 건설로 국민의 부력(富力) 증진
- 교육 기관 설립으로 청소년 교육 진흥